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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이름으로 비웃지 마세요…만 14살, 정치하기 딱 좋은 나이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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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기획
‘불법선거운동’ 만 14살 김찬씨의 꿈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금지된 정치
더 강고해진 ‘교실 정치화’란 편견
겹겹의 금기에서 몸부림친 만 14살
선거운동하며 공선법 의도적 위반

4월 총선 당일 경찰에서 출석통보
정작 조사선 “자발적인 것 맞나?”
검찰은 어리다며 공소제기 안 해
법원 ‘미성년=미성숙=선거운동금지’
2년 뒤 대선서 합법적 선거운동 꿈

지난 4월 총선 당시 18살 미만 청소년인 김찬(오른쪽 셋째)씨의 선거운동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배성민 노동당 부산시당위원장에게 8월20일 법원이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항의하며 부산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8월27일 항소심이 진행될 부산고등법원(연제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찬 제공
지난 4월 총선 당시 18살 미만 청소년인 김찬(오른쪽 셋째)씨의 선거운동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배성민 노동당 부산시당위원장에게 8월20일 법원이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항의하며 부산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8월27일 항소심이 진행될 부산고등법원(연제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찬 제공
▶ 공직선거법 제60조 1항 2호는 ‘미성년자(18살 미만)’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 14살인 노동당원 김찬씨는 ‘나를 잡아가라’는 마음으로 지난 4월 총선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그의 선거운동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배성민 노동당 부산시당위원장에게 부산고등법원은 지난 4일 항소심에서 벌금 80만원(1심 100만원)을 선고했다. 김찬씨가 “미성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글을 보내왔다. 전화기가 울렸다. 지난 4월15일. 총선 당일이었다. 부산 사하경찰서 지능팀이라고 했다. 대뜸 나이를 물었다. 나는 “만 14살”이라고 답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경찰은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불법선거운동을 했으니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정치적인 활동을 했다는 것을 학교가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될지 분명했다. 두려웠다. 그래도 당당하게 나가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며칠 뒤 찾은 경찰서는 예상과 달랐다. 40여분간 이어졌던 조사에서, 수사관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졌다.
투표 당일 걸려온 경찰 전화
“자발적으로 한 것이 맞나요?” “강요에 의한 것이었나요?” “금품을 받지는 않았나요?” “누가 함께 선거운동을 하였나요?” 끊임없이 선거운동의 자발성과 순수성, 진정성을 의심했다. 같은 질문과 답이 계속됐다. 그리고 5월 중순 경찰은 조사 결과를 통보했다. 경찰은 배성민 노동당 부산시당위원장은 입건하고, 나는 내사종결처리 했다고 전했다. 분명 불법 선거운동을 한 사람은 ‘나’였다. ‘나를 잡아가야’ 했다. 그런데 청소년의 선거운동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정당의 지역 선거책임자를 처벌하다니. 법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기쁘지 않았다. 아니 기뻐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27일, 만 18살 청소년에게도 선거권을 주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언론에서는 떠들썩했지만 만 18살이 되지 않는 나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선거권이 있느냐에 따라 정당가입과 선거운동이 좌우되는 법체계 안에서 여전히 만 18살 이하의 정치적 자유는 억압된 상태였다. 청소년의 정당가입과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은, 이해와 요구가 충돌하는 사회 속에서 청소년들만 침묵하고 있으라는 요구와 마찬가지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지지 정당과 후보자를 밝히는 것 또한 불법의 낙인을 피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조차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은 사회 안에 함께 사는 시민이고 그러하니 연령에 관계없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게 무엇이든(특히 정치) 직접 당사자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청소년은 정치적으로 순수해야 한다’거나 ‘교실이 정치화된다’는 식의 논리가 만들어낸 편견의 벽은 높고 그 뿌리는 예상보다 깊다. 정치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순수, 중립성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논리조차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다르지 않다. 청소년들은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이를 넘어서기 위해 청소년 당원들(이때 나는 참가하지 못했음)이 직접 나섰다. 이미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불복종의 방식으로 공직선거법에 반기를 든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를 밝히면서 부모와 주변인에게 특정 후보나 정당을 추천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물론 사법기관은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묵인하지 않았다. 당시 3명이 선관위로부터 경고 및 행정조치를, 그중 1명은 경찰 조사를 받았다. 2년이 흘렀다. 최소한 만 18살 미만의 청소년들에게 변한 것은 없었다. 제21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꾸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사법기관의 심판을 받을 수 있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방선거 당시의 경험을 거울삼되 이번에는 좀 더 과감하게 정치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부모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대상을 넓혀 시민들을 직접 만나 선거운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청소년 당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광역 시도당의 공식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경찰의 말대로라면, 나는 노동당원으로 총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 동안 총 2차례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 노동당의 비례대표 순번이 쓰인 어깨띠를 매고서 “다른 선택 다른 사회, 노동당과 함께!”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었다. 교차로의 교통섬에 서서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시민들을 향해 인사했다. 어떤 시민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노동당의 공약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도 있었다. 정말 평범하고 평화로운 선거운동이었다. 옆에 선 다른 정당 정치인과 인사를 하기도 했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운동은 “정당 또는 후보자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 규정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 참여한 청소년들에게 ‘선거운동’은 이런 법적 의미를 넘어선다. 선거운동은 청소년 스스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감각을 일깨웠다. 지금껏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회적 논의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왔다. 학생이 주체가 돼야 할 학교라는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의사결정 과정에서조차 배제되는 일은 흔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운동은 스스로의 생각을 말하고, 시민들을 설득하는 정치적 광장이었고,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짧지만 특별했다.
탄원서를 읽던 판사의 웃음소리
경찰 조사가 마무리된 뒤 검찰은 지난 6월 노동당 부산시당의 배성민 위원장을 공소 제기했다. 배 위원장의 죄명은 공직선거법 위반이었다. 위반 조항은 공직선거법 제60조 1항 2호. 청소년의 선거운동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죄였다. “일체의 강요와 명령, 지시가 없었던 자발적인 청소년의 의사 표현 행위였다”는 나의 주장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7월23일 부산지법 서부지원에서 열린 1심 첫 공판. 검사는 공소장을 읽어 내려갔다. “노동당 당원인 미성년자인 김찬에게 선거운동 일정과 장소를 공지하여 김찬을 선거운동에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찬으로 하여금 (…) 노동당 후보에게 투표를 하도록 호소하게 했다” “이로써, 피고인 18살 미만의 미성년자인 김찬으로 하여금 선거운동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판사의 질문. 검찰의 논리를 재판부가 넘겨받은 듯했다. 판사의 심리가 시작됐다. 물론 배 위원장만을 향한 것이었다. “김찬은 본인이 미성년자이지만 신념에 따라 선거운동을 했다고 하는 것 같은데 피고인 의견은 어때요?” “법은 왜 미성년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을까요?” “법은 미성년자가 미성숙하니깐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거잖아요.” 그 논리대로라면 ‘미성년=미성숙=선거운동 금지’였다. 판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쓴 탄원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판사의 웃음소리가 재판정을 울렸다. 나는 그 웃음을 비웃음으로 느꼈다. “청소년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려는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탄원서를 썼다”는 대목을 읽으면서다. 방청석 뒤편에 앉았지만 그 소리는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눈물이 났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무시되고 있는 현장을 견디기 힘들었다(이날 검찰은 배 위원장에 대해 벌금 200만원을 구형했다). 1심 선고를 위한 재판은 지난 8월20일 열렸다. 판사는 “피고인은 벌금 100만원에 처한다”며 “정치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선거운동을 제한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직선거법의 입법 목적을 훼손했으며, 선거운동을 한 미성년자와 유권자들에게 부당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피고인의 죄질은 가볍지 않다”고 했다. 벌금 100만원형은 5년간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정치인에게 가볍지 않은 형이다. 청년 정치인으로서 지역정치를 꿈꾼 배성민 위원장에게는 멍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개인이 보기에 이번 판결은 청소년을 ‘정치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존재로 공인한 것이었다. 나는 묻고 싶다. “다른 선택 다른 사회, 노동당과 함께”라는 문구를 청소년이 주장하는 것과 선거의 공정성이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이번 사건에 대한 첫 판결이 나오자, 노동당 부산시당은 곧바로 항소를 했다. 2심이 진행될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심 재판부에 항의했다. 재판 당사자여야 하는 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불복종 행동의 대가를 치르겠다고 나선 결심조차(물론 경찰에게 연락이 왔을 때는 위축됐지만) 배제됐다. 처벌을 받을 자격조차 없었던 셈이다. 지난 11월4일, 2심 재판부의 판결이 나왔다. 1심보다는 적은 벌금 80만원이 선고되었다. 판사는 여전히 “미성숙한 미성년자를 동원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 또 한편으로는 “헌법상 기본권인 참정권을 확대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노동당 부산시당의 입장을 일부 수용했다.
불법 딱지는 두렵지 않다
모든 일의 발단은 나의 선거운동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 다른 사회, 노동당과 함께”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선거운동을 한 것과 ‘동원’은 무관하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다른 후보와 정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경찰의 출석요구를 받았을 때, 당직자가 검찰에 기소되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당직자를 비롯해 경찰 조사를 받은 다른 당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공직선거법 제60조(미성년자 선거운동 금지)와 정당법 제22조(미성년자 정당가입 금지)가 잘못된 법이라고 생각하기에 함께 결정한 행동이었지만, 꼭 내 탓인 것만 같았다. 2년 뒤에 있는 대선에서도 나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여전히 만 18살 미만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선거에서도 사람들에게 나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설득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사회를 만드는 움직임에 함께하고 싶다. 그 선거운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을까. ‘불법 딱지’는 두렵지 않다. 김찬 노동당원
청소년 정치적 자유 보장, 어디까지 왔나
“선거운동, 누구든 언제든 할 수 있어야” 당원 자격 제한 철폐안 4건 국회 발의
선관위 보고서 “청소년 참여 확대해야” 지난 4일 부산고등법원 형사2부(오현규 부장판사)는 배성민 노동당 부산시당위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하면서 “지난 4월 총선 당시 노동당 당원인 미성년자 김찬에게 총 2회에 걸쳐 노동당 소속 후보자의 성명이 기재된 어깨띠를 두르고 피켓을 든 채로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인사하는 방법으로 지지를 호소하게 하여 법을 위반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청소년 선거운동이 불법임을 밝히면서도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활동의 자유라든지 국민의 기본권(참정권) 확장과 관련한 논의와도 연관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고 했다. 재판부가 언급한 ‘여지’는 지난해 선거연령이 만 18살로 조정된 것과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김찬씨 사례에서 문제가 된 선거운동도 마찬가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연수원이 2017년 한국의회학회에 의뢰해 내놓은 ‘국민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정당제도 개선방안 연구’는 현행 공직선거법 등에서 규제하고 있는 선거운동의 연령(청소년)이나 시기(선거기간 외), 장소(온라인), 방법(온라인 공간의 활성화) 등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는 법으로 선거운동을 규제하지 않는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원내 정당은 미성년자에게 당원 자격을 주지 않는다. 정당법 22조가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 당원 자격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21대 국회엔 4건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16살 이상’을 조건으로 내건 개정안(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을 제외하면 모두 현행법의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를 삭제하고 “누구든지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로 바꾸자는 데 뜻을 같이한다. 정당의 구성 및 활동은 당헌, 당규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정당 민주주의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김찬씨가 당원으로 활동하는 노동당은 나이와 무관하게 당원 자격을 인정한다. 정의당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예비당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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