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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무기계약직 실낱 희망에…그 청년은 밤샘노동을 했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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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전한 고 장덕준씨의 속사정

연장근무 땐 새벽 5시 넘어까지
심야에 하루 8~9.5시간씩 일해
1년4개월만에 몸무게 15㎏ 줄어
“동료가 무기계약직화 안됐는데,
근무태도 불량이 이유란 말 돌아
아들이 무리해서 일한 것 같아”

고 장덕준 씨 어머니 박미숙 씨가 26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린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부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의원들과 면담을 갖고 아들이 근무했던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장덕준 씨 어머니 박미숙 씨가 26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린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부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의원들과 면담을 갖고 아들이 근무했던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엄마 박미숙(52)씨에게 첫째 아들(고 장덕준씨·27)은 “정말 피부가 뽀얗고, 빛이 나는 애”였다. 보름 전인 지난 12일, 경북 칠곡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심야근무를 마치고 새벽 6시께 집에 돌아온 아들은 욕실에 들어간 뒤 영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아들을 ‘20대 쿠팡 과로사 택배노동자’라고 불렀다.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26일 아침 박씨는 남편과 함께 생전 아들이 입었던 청바지와 무릎 보호대를 품에 안고, 오송행 케이티엑스(KTX)에 몸을 실었다. 이날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종합감사에 엄성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전무가 증인으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묻고 싶었다. 지난 1년4개월 동안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내 아들이 왜 ‘일용직’이냐고, 쿠팡은 무엇이 두려워 상세 근무시간 내역이 아닌 월별 근무일수 기록만 준 것이냐고, “운동장만한” 물류센터 안에서 당신의 직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고 있냐고.
아들은 지난해 2월 경북의 한 4년제 대학(로봇공학 전공)을 졸업했다. 취업준비 중 용돈을 벌기 위해 택배 상하차(대형 화물차에 택배상자를 싣는 작업) 아르바이트를 했고, 같은 해 6월부터 쿠팡 물류센터에서 1일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그마저도 낮 시간대에는 지원자가 많아 일을 구하기 힘들어 진입장벽이 낮은 밤 시간대를 선택했다. 그렇게 아들은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연장근무가 있는 날은 새벽 5시30분까지, 하루 8~9.5시간 밤을 새우는 ‘심야노동’을 했다. 주·야간을 번갈아 하는 교대근무제도 아니어서 낮밤이 아예 바뀐 채로 생활을 해야 했다. 시간당 최저임금에 야간근무수당이 붙은 일당을 받았다. 처음엔 물류센터 초보자들이 하는 ‘피커’(집품: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바구니에 넣어 포장 담당자한테 전달)로 일했던 아들은 숙련도를 인정받아 지난 연말께부터 이들을 교육하고 업무를 지원하는 ‘워터’(간접)가 됐다. 그렇게 1년4개월이 지나는 동안 키 176㎝에 몸무게 75㎏이었던 아들은 15㎏이 빠졌고, 청바지 사이즈는 36인치에서 30인치까지 줄었다. 이날 국정감사장 부근에서 만난 박씨는 <한겨레>에 “아들이 말하길, 이번주에 시간당 100개의 상품 바코드를 찍은 피커가 그다음 주에도 100개를 처리하면 쿠팡은 더 이상 일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며 “한주 뒤에는 최소 110~120개를 처리하는 식으로 업무 속도가 높아진 사람만이 (물류센터에서) 살아남는 구조”라고 전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부부는 물류센터를 관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것을 여러차례 권유했다. 하지만 아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이거 일단 해보고 (생각해보겠다)”라며 학교 교수 등이 소개한 면접 기회를 마다했다. 엄마는 ‘심야노동 지옥’을 말하면서도, 아들이 물류센터 근무일수에 목을 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들은 지난 8월에는 25일, 9월은 23일, 이달 들어선 12일 사망 직전까지 9일을 일했다. 지난 8월15~21일, 9월5~11일에는 주 7일씩 연속 근무를 한 적도 있다. 그랬던 엄마는 아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속사정을, 뒤늦게 아들의 빈소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은 물류센터에서 주 5~6일씩 성실하게 일하면, 대기업인 쿠팡에서 무기계약직(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박씨는 “2년간 물류센터에서 일을 잘하기로 소문난 아들의 동료가 무기계약직 전환에서 떨어졌는데, (회사 쪽 이유가) ‘근무태도가 나빠서’라는 말이 돌았던 것 같다. 덕준이는 자기가 무기계약직 전환을 신청할 때 근태 문제의 소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 정규직처럼 주 5~6일씩 일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쿠팡에선 무기계약직 전환율조차 1~2%의 ‘희망고문’이었다는 게 동료들의 설명이다. 성실한 근태를 ‘스펙’ 삼아 무기계약직 전환을 꿈꿨던 장씨의 기대는 그의 급여명세서에서도 드러난다. 물류센터 근무 초기였던 지난해 7월부터 9월 사이 월 200만원 이하였던 장씨의 급여는 물류센터에서 일한 지 1년 무렵인 올해 5월 이후 적게는 243만원(5월), 많게는 310만원(8월)까지 뛰었다. 일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무기계약직 전환의 기대도 커졌고, 이에 근무일수를 무리하게 늘린 만큼 받는 돈도 늘어났던 셈이다. 아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졸업한 학교에서 소개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자리도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는 게 엄마의 설명이다. “정부에서 청년 채용하면 (중소기업에) 지원금을 주는데, 그 기간이 끝나면 애들을 해고하는 거예요. 어차피 가봐야 단기 일자리인데, 급여는 쿠팡 물류센터처럼 최저임금 주고, 그렇다고 딱히 장래성이 있는 일도 아니고. 애들이 갈 데가 없잖아요.” 박씨는 그래서 칠곡의 쿠팡 물류센터에 아들과 같은 20대 청년들이 많이 몰린다고 했다.
지난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위원들 앞에서 장씨의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위원들 앞에서 장씨의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인에게는 남동생(24)과 막내 여동생(13)이 있다. 지금 엄마가 가장 바라는 것은 근로복지공단이 아들의 죽음을 산업재해(과로사)로 인정해주는 것과 남은 자녀들이 첫째 아들과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 문제가 제대로 알려져 개선되는 것이다. 고인의 죽음이 과로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쿠팡 쪽은 27일 뉴스룸을 통해 “고인의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44시간이었고, 가장 많이 근무했을 때가 주 52.5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이런 입장에는 계속된 심야노동의 고충 등은 담겨 있지 않다. 이희종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 집행위원은 “쿠팡이 앱을 통해 하루 단위로 근무를 신청하고 일감을 얻는 플랫폼 노동 방식을 활용해 고용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경쟁적으로 심야노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심야근무를 하면 최저시급을 받으면서도 어느 정도 돈이 모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정작 심야노동에 노출된 청년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쿠팡이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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